
몬테 카시노 전투
3일 전
가히 대단한 배짱이었습니다.
독일군은 몬테 카시노 산악 지대에서 거의 5개월 동안 이탈리아를 향한 연합군의 진격을 저지했습니다. 한때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했던 곳에는 폐허와 월광만이 드리웠습니다.
연합군은 북아메리카에 상륙한 후, 프랑스 북부를 침공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영국의 처칠 총리는 이탈리아의 침공을 추축국이란 배의 배꼽으로 간주하며 지지했습니다.
1943년 7월 연합군이 진행한 시칠리아 침공, 허스키 작전은 큰 성공을 거뒀고 이탈리아 정권을 붕괴시켰습니다. 독일군은 신속하게 대응하여 이탈리아를 점령했습니다. 이제 이탈리아는 독일의 손아래에 놓였고 전쟁은 계속될 예정입니다. 연합군은 9월에 이탈리아 살레르노에 상륙했습니다. 연합군 지휘관들은 1943년 10월까지 로마가 함락될 것이라며 낙관적이었습니다.

영국군이 이탈리아 카시노 근처에서 쓰러진 독일군 3호 돌격포를 조사하고 있다. 1944년 5월 18일 사진: 제2 군사 기록 및 사진촬영 부대의 로클린(No 2 Army Film and Photographic unit)
연합군은 이탈리아에서의 전투에서 거칠고 험준한 지형과 독일군의 능숙한 방어를 통해 이곳이 절대 추축국의 약점이 아님을 느꼈습니다. 미국의 장군인 마크 클라크는 후에 이를 두고 "대단한 배짱이었다" 라고 전했습니다 . 또 몬테 카시노가 제일 고됐다고 덧붙였습니다. 연합군은 살레르노에서 몬테 카시노까지 150km를 싸우는데 4개월 이상이 걸렸습니다. 이곳에서 독일군은 무장 전선을 펼쳐 겨울 전선을 구축했습니다. 산악 방어를 강화하고 도하의 가능성을 차단하며 몬테 카시노를 겨울 전선의 요충지로 만들었습니다.

3호 돌격 전차는 공격해오는 장비를 받아치는데 탁월했습니다.
연합군의 초기 공격은 아무런 소득도 없었으며 막대한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독일군은 화력 전개에 우수하고 견고한 위치를 사수했고 연합군은 이를 뚫기 어려운 지형에 놓여져있었습니다. 연합군은 정밀 포격도 맞닥뜨렸습니다. 연합군의 지휘관들은 독일군이 몬테 카시노 수도원를 관측 지점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수도원은 일련의 공습으로 돌무더기꼴이 됐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독일은 역사 유적을 존중했기에 대수도원을 관측 지점으로 삼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공습 이후 독일군은 폐허를 점령하고 방어 거점을 세웠습니다.

독일의 항복 이후 폐허가 된 몬테 카시노 수도원. 미 육군 항공대 사진 232-6. 작가 미상.
연합군은 독일군의 전선을 무너뜨리기 위해 카시노 북부의 안치오에 상륙했습니다. 꽤나 즉흥적으로 결정된 사안이었습니다. 수송선은 결전의 날을 위해 영국으로 이송될 예정이었기에 발빠르게 상륙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초기 상륙에서는 로마 외곽까지 정찰조의 순찰에서 저항은 없었습니다. 미군 사령관 존 P. 루카스는 이를 활용하기보다는 자신의 상륙 지역에 통합하고 진영을 굳히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독일군에게 상륙 지대를 둘러싼 지역을 요새화하고 병력을 동원할 시간을 주게 되었으며 빠른 승리를 거둘 기회를 놓치게 되었습니다. 처칠은 이에 대해 "들고양이 잡으려고 고래를 데려온 꼴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 달 후 루카스는 사임됐고 루시안 트루스코트 소장이 지휘를 맡았습니다.

제133철인연대와 제142보병연대는 몬테 카시노 근처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독일군은 연합군의 공격에 정밀한 포격을 가했습니다.
카시노와 안치오에서의 전투와 독일군의 저항은 1944년 5월 폴란드의 제2군단과 제1캐나다보병사단이 방어선을 향해 20여개의 대규모 공세를 퍼부어 전열이 무너지기 전까지 계속됐습니다. 독일군은 20,000명의 사상자를 낸 반면 연합군은 55,000명의 사상자를 낸 피로 얼룩진 승리였습니다. 상황은 퇴각하는 독일군을 교란하기 위해 군대를 지휘하던 트루스코트 장군이 로마를 점령하라는 새로운 명령을 받으며 더욱 악화됐습니다. 독일군은 고딕 라인으로 탈출하여 거의 반년 동안 연합군의 진격을 저지했습니다.

폐허가 된 몬테 카시노 수도원 내부의 폴란드 병사들. 작가 미상.
연합군은 로마를 점령했습니다. 이 승리는 이틀 후 진행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의해 빠르게 잊혀졌습니다.
몬테 카시노 수도원은 전쟁 후 재건됐으며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봉헌됐습니다.

미군을 환영하고 있는 로마 시민들. 작가 미상.